retreat
피/정/의/집/소/개
품에 피정관은 처음 피정의 집으로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에 산유리는 일차선에 비포장 도로만 있어서 비만오면
자동차가 진흙탕에 빠져 경운기로 차를 끌어내었고 눈만 오면 갈치고개가 너무 높아서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큰 고래를 넘어 성당을 다녀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집은 산 속에 덩그러니 외따로 있어서 마실 다녀올 옆집도 먼거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하도 심심하여 동그란 나무판에 하나 둘 셋~ 열넷까지 숫자를 써서
나무마다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십자가의 길을 하였는데 어린 아이들과 닭과 강아지들도 저를 따라다니면서 십자가의 길을 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이집 저집을 방문하다가 된장 만드는 것을 보고 저도 가마솥에 된장을 직접 쑤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저의 집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는데 그 창고는 조그만 탁구대와 강아지와 염소, 닭들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저는 이 창고 자리에 가마솥 부엌이 있는 구들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년간(1996~1998년)에 걸쳐 벽돌과 진흙으로 가마솥 부엌과 구들방이 있는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시골집에서 쓰던 구들장을 어렵게 구해와서 구들을 제대로 놓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불을 피워서 구들방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을 몰라서 가마솥에 물만 펄펄끓고 방은 차가워서 일년동안 그 집을 단 한번도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99년쯤 어느 추운날 샬레시오 수도회 신부님과 나눔의 집을 관리하는 이모 삼촌들이 이집을 빌려만 주신다면
우리가 알아서 따뜻하게 사용할테니 무조건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집은 장작불들 때어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을텐데"라고 걱정하였지만
신부님이 극구 쓰겠다고 하여서 한달을 사용하기로 하고 빌려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신부님께서는 돌보던 아이들 20여명과 이모산촌들과 함께 아침에는 성무일도를 시작해서 낮에는 장작을 패어서 마당에 가득 예쁘게 쌓아놓고,
굴뚝에서는 구수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도록 불을 지피고, 별이 쏟아지는 밤에는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루를 마감하였습니다.
걱정했던 구들방은 시커멓게 타들어 갈 정도로 따뜻하게 되어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워 졌습니다.
이렇게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님과 아이들이 처음 이집을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러 수도회에 소문이 나서 수년간 사용하다가
일반인들에게 오픈하여 피정의 집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쭈욱 16년이상, 이집에는 너무 많은 교우님들이 오셔서 쉬고 가셨어요
교우님들의 사랑 덕분에 품에 피정의 집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여러 성당의 교우님들이 고요함으로 머물다 가신답니다.